등잔과 함께 불을 밝히는 용도였던 초를 이제는 더 이상 그 목적으로 사용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흔들리는 촛불의 감정, 흘러내리는 촛농의 감성은 전등이나 램프가 대신할 수 없죠.
캔들에 불을 붙이는 것만으로 큰 위안과 위로를 얻는 요즘입니다.
EPISODE 1
초 태우는 시간
“촛불의 움직임이 격렬해질수록 내면은 평온해진다.”
나에게도 역시 캠핑의 꽃은 모닥불이다.
장작이 타닥타닥 타들어 가며 부서지는 과정을 바라보면 머릿속의 말과 생각이 한 줌의 재처럼 사그라든다.
도심 한복판에서 그 장면이 그리워질 때는 창문을 열고 가만히 캔들을 켠다.
복잡하게 얽힌 심경이 한 가닥씩 천천히 촛불로 옮겨가는 과정을 지켜본다. 불꽃의 움직임이 격렬해질수록 내면은 평온해진다.
기도와 명상의 순간에는 그래서 항상 초가 놓여 있는 것일까?
명절마다 우리 집의 차례는 항상 초와 향을 켜면서 시작되고 끄면서 마무리된다.
사찰의 향냄새와 목탁 소리, 법당 안을 지키는 기도용 초의 빛을 마주하면 숭고해진다.
교회의 송구영신 예배에서 촛불을 밝히는 것도 마찬가지다.
그 경건함이 예의를 갖추고 성의를 표현하기에 여러모로 적절하다.
결혼식이나 생일 축하에 초가 빠지지 않고, 프로포즈를 준비하며 몇백 개의 초를 한 땀 한 땀 켠다면
아마도 비슷한 이유일 것이다.
상상하기 어렵지만 한때 초는 중요한 생필품이었다.
세제, 섬유유연제 등으로 잘 알려진 대규모 글로벌 브랜드의 시작이 비누와 양초였다는 히스토리를 들은 적이 있다.
적어도 이제 한국에서는 정전으로 초를 켜는 경우는 드물지만 일렁이는 불꽃은 조명으로 대체할 수 없다.
식사 테이블의 낭만적인 분위기를 더해주고, 촛불 앞에서 무서운 이야기를 주고받는 클리셰를 완성하는 것은 여전히 캔들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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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잔과 함께 불을 밝히는 용도였던 초를 이제는 더 이상 그 목적으로 사용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흔들리는 촛불의 감정, 흘러내리는 촛농의 감성은 전등이나 램프가 대신할 수 없죠.
캔들에 불을 붙이는 것만으로 큰 위안과 위로를 얻는 요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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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 태우는 시간
“촛불의 움직임이 격렬해질수록 내면은 평온해진다.”
나에게도 역시 캠핑의 꽃은 모닥불이다.
장작이 타닥타닥 타들어 가며 부서지는 과정을 바라보면 머릿속의 말과 생각이 한 줌의 재처럼 사그라든다.
도심 한복판에서 그 장면이 그리워질 때는 창문을 열고 가만히 캔들을 켠다.
복잡하게 얽힌 심경이 한 가닥씩 천천히 촛불로 옮겨가는 과정을 지켜본다. 불꽃의 움직임이 격렬해질수록 내면은 평온해진다.
기도와 명상의 순간에는 그래서 항상 초가 놓여 있는 것일까?
명절마다 우리 집의 차례는 항상 초와 향을 켜면서 시작되고 끄면서 마무리된다.
사찰의 향냄새와 목탁 소리, 법당 안을 지키는 기도용 초의 빛을 마주하면 숭고해진다.
교회의 송구영신 예배에서 촛불을 밝히는 것도 마찬가지다.
그 경건함이 예의를 갖추고 성의를 표현하기에 여러모로 적절하다.
결혼식이나 생일 축하에 초가 빠지지 않고, 프로포즈를 준비하며 몇백 개의 초를 한 땀 한 땀 켠다면
아마도 비슷한 이유일 것이다.
상상하기 어렵지만 한때 초는 중요한 생필품이었다.
세제, 섬유유연제 등으로 잘 알려진 대규모 글로벌 브랜드의 시작이 비누와 양초였다는 히스토리를 들은 적이 있다.
적어도 이제 한국에서는 정전으로 초를 켜는 경우는 드물지만 일렁이는 불꽃은 조명으로 대체할 수 없다.
식사 테이블의 낭만적인 분위기를 더해주고, 촛불 앞에서 무서운 이야기를 주고받는 클리셰를 완성하는 것은 여전히 캔들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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